보훈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 거쳐 매달 선정
6월의 독립운동가에 의병으로 구국항일운동에 나섰던 오덕홍(1885∼1909), 김일언(1859∼미상), 정래의(1872∼미상) 의병장이 선정됐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해산으로 촉발된 시위대 병사들의 봉기가 실패로 끝난 이후, 8월 5일 원주진위대의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의병전쟁이 확산됐다.
오덕홍 의병장은 의병전쟁 마지막 시기 가장 치열했던 전장지에서 활약한 인물로, 1909년 8월 12일 전남 나주 등지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해 일본군을 기습공격하거나 배신자 등을 처단했다.
김일언 의병장은 1907년 4월 정용기 의병장이 재기한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해 우포장으로 활동했고, 최세윤 의병장 휘하에서 도포군으로 활동했다.
정래의 의병장도 정용기 의병장이 재기한 산남의진의 우익장, 좌익장, 참모장으로 경상북도 흥해·영해·청하군 등지에서 활동했다.
정부는 세 분의 공훈을 기려 오덕홍 의병장에게 1997년, 김일언 의병장에게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정래의 의병장에게 2022년 건국포장을 각각 추서했다.
한편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보훈부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를 거쳐 선정한다. 독립유공자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후세들의 나라사랑 정신 고취에 기여하고자 매월 독립운동가를 선정해 그분들의 생애와 공적 등을 집중 재조명한다.
6월의 6·25전쟁영웅에 전투 중 목숨을 걸고 유선 통신선 복구에 나섰다 전사한 홍윤조 대한민국 육군 중위가 선정됐다.
홍윤조 중위는 1953년 1월 육군 소위 임관과 동시에 제8사단 제16연대 통신 가설 장교로 임명됐다.
1953년 7월 13일, 중공군은 유리한 지형과 작전상 요지를 확보하기 위해 중부전선에 5개 군단을 투입해 최후 공세를 시작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도처에서 백병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제8사단 제16연대의 철수계획이 변경됐지만, 예하 1대대는 통신선 단절로 철수계획을 전달받지 못해 고립 위기에 처했다.
이에 홍윤조 소위(당시 계급)는 대원 10명과 함께 끊어진 유선 통신선 복구에 나섰다. 이때 적의 박격포탄이 터져 가슴과 대퇴부에 큰 부상을 입었고, 그는 “생명선을 연결하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전사했다.
이후 대원들은 목숨을 걸고 통신선을 연결했고 무사히 철수작전을 완료할 수 있었다.
홍윤조 대한민국 육군 중위. (사진=육군기록정보관리단)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중위로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이달의 6·25전쟁영웅도 보훈부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를 거쳐 선정한다. 해당 6·25전쟁영웅과 관련한 생애와 공적 등을 조명하는 행사 등이 함께 펼쳐진다.
※ 위 기사는 ‘나라사랑신문’에서 발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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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예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