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은누리가 전자책 노옥분 시선집 ‘이만하면 괜찮아’를 출간했다.
시선집 ‘이만하면 괜찮아’, 우선 느낌부터 따뜻합니다. 시인 자신의 독백일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등을 두드려주며 건네는 위로일까요? 시들을 읽어가다 보면, 안분지족(安分知足), ‘분수를 알면 (마음이) 족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어느새 가슴 속이 군불 땐 아랫목처럼 뜨뜻해집니다.
- 출판사 서평
늘 올려다보며 살아요/ 나는 앉은뱅이니까요// 밟히면서도 웃어요/ 흙수저 물고 나왔으니까요// 블랙리스트 식물은 아니에요/ 희지도 검지도 않은 청자색이니까요// 특별하지는 않아요/ 천지사방 길목마다 흔하니까요// 그렇다고 얕보지는 마세요/ 나도 꽃이니까요// 누구일까/ 개똥밭에서도 웃게 만드는/ 내 이름 지은 그 분
- ‘개불알풀꽃’ 전문
살다 보면 기쁜 날도 있지만 우울한 날도 많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생각보다 괜찮은 날들이 많다. 풀밭에 쪼그려 앉아야만 보이는 개불알풀꽃, 을씨년스러운 날 아침, 따뜻한 콩나물국 한 그릇, 방긋이 웃어주는 아기 얼굴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살아볼 만하다.
이 시선집은 그런 날들의 기록이다. 크고 요란한 이야기보다는 작고 조용한 순간들 속에서 건져 올린 삶의 온기, 그리고 긍정의 숨결. 작가는 너무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충분한 날들이 있다는 걸 시를 통해 말없이 전하고 싶었다. 제1집 ‘네가 없는 날이면 너를 만난다’(2009), 2집 ‘섬에 서다’(2015), 3집 ‘물비늘 풍경’(2023) 등에서 선정한 시편과 발표하지 않은 2편을 포함해 70편의 시를 수록했다.
시는 내 삶의 한가운데서 늘 조용히 숨 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간절히 위로하고 싶을 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소리 내지 못한 말들을 시에 기대어 건넸습니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 이 글이 당신의 어깨를 토닥여줄 수 있길 바랍니다. 힘겨운 날에도 작은 웃음 하나 떠올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이만하면 괜찮다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우리 서로에게 말해줄 수 있기를! 다시 걸어가는 하루가 시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길 바라며…. 지금, 이 시집을 펼쳐준 당신에게 ‘이만하면 괜찮다’는 말을 건넵니다.
- 2025년 5월 초순 저자 노옥분
노옥분 시인 소개
경남 남해 출생. 호 가을(佳乙). 1995년 ‘문학과 의식’ 수필, 2008년 ‘문예운동’ 시 등단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자신의 글보다 남의 작품을 편집하고, 자서전과 회고록을 집필하며 타인의 삶을 꾸준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2025년 현재 월간 ‘문학도시’ 교열기자, 계간 ‘부산가톨릭문학’ 편집주간&교열기자, 부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 소식지 ‘녹색도시 釜山’(2012년~ )과 ‘사하문학’ 편집장을 맡고 있다. 문화지 ‘봉생문화’, ‘은누리’, 문학지 ‘화전문학’, ‘낟가리’ 등 편집장을 역임했다. 시집 ‘네가 없는 날이면 너를 만난다’, ‘섬에 서다’, ‘물비늘 풍경’과 시선집 ‘이만하면 괜찮아’, ‘깊은나무 푸른이끼-노옥분의 감성데이트’ 등이 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
살아가는 동안
해마다 떨어지는 낙엽에
함께 쓰러져도 볼 일이다
살아가는 동안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에
노래도 불러 볼 일이다
살아가는 동안
물처럼 흐르는 세월을
멈추지 않고 시詩로 견뎌볼 일이다
물비늘 풍경
오롯이 제 숨 쉬고 싶을 때
고단한 몸 파업하기 전에
바다와 강이 몸을 섞는 고니나루쉼터
돌의자에 가만히 앉아 물멍을 때린다
짬 없이 들락거리던 장맛비 틈 사이
사선으로 비껴드는 짧은 햇살 받으며
눅눅한 마음을 탈탈 뒤집어 말린다
지나버린 시간 되돌려 세워 볼을 세게 꼬집다가
순정하게 벼려진 기억의 비수에 허를 찔리기도 한다
거슬리는 것들 너그럽게 눈감아 줄 아량이 없었던 나는
물의 가장자리를 보지 못하고 종종 중심을 기웃거렸다
복판의 소요가 가라앉은 뒤에도 둥글게 손잡고
원을 그리며 우아하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제, 한 뼘 두 뼘 놓아 버리고 조용히 번져 가
더 큰 아름으로 세상을 품어야겠지
타종 끝난 뒤 오래오래 그윽한 종소리처럼
삶도 그렇게 느리게 또 둥글게 저물어 갔으면 좋겠다
꼬리 떨어진 가오리연처럼 홀로 잠수하는 풀등
자리 박차고 나와 저 혼자 도망치는 일은 말아야겠다
문득, 웅어 한 마리 솟구쳐 물의 수평을 깬다.
섬에 서다
밤새, 해조음海潮音
깊은 아래서 들어주던 섬
해가 솟자 바다는 갈앉고 섬은 드러난다
드러난 섬에서만 부서지는 파도
파도 맞으며 서 있는 한 점, 나는
바다와 하늘 사이의 경계가 된다
위와 아래, 좌·우 방향이 모두 사라져
순시간과 역시간이 충돌하고
나아갈 곳도 들어올 곳도 없는
바다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이쪽이기도 하고 저쪽이기도 한
하늘과 바다 사이로, 다시
해가 저문다, 섬이 갈앉는다
저문 바다, 저문 하늘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사라지고
충돌하던 시간은 멈추어
내가 바다며 하늘이 되는 밤
해 떨어진 곳이, 결코
저쪽일 수 없다며 숨죽인 파도
해조음만 서럽게 들리는 그런 밤을
우리는 또한 섬이라 한다
나는 밤마다 그 섬에 선다
네가 없는 날이면 너를 만난다
오랫동안 그 길은
먼지로 덮어 두었다
가끔씩 산그늘로
세수를 시켜주면
저기 가을이 온다고 까불대는
고추잠자리의 군무群舞
길 위에 잠든 나
새벽이 손잡고 나서던 날
촘촘히 구멍 난 질경이 풀과
계곡을 헤엄치는 송사리 떼의 자유
지나는 여름과
다시 만나는 가을의 사잇길
절하며 걸어오는
햇사과의 수줍은 볼
길은 일어서고
하늘이 내려앉는다
모란꽃 진다
비가 내리는 날
너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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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