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문익환 목사 추도사 음성 오디오 파일도 공개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한열 열사의 유품인 고교생 시절의 기록과 압수·수색 영장, 부검결과 등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관련된 기록들이 복원되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8일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생애기록 38건을 복원, 특히 이 열사의 일기 ‘My Life’, 고교생특별수련기, 어머니의 글 등은 온라인으로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열사는 1987년 당시 민주화 시위과정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사망했고, 이를 계기로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번에 공개되는 기록 중 이 열사가 17세 고교시절에 남긴 일기 ‘My Life’에는 학생으로서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뿐만 아니라 삶과 세상에 대한 진지함과 깊은 생각, 다짐,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 등이 잘 나타나 있다.
“17세의 이 나이에 나는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오늘은 한해를 보내는 기분이 다른때와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든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정신적 바램이 컸던 해라고 본다. 나의 생각 나의 사상은 점점 어떤 확고한 가치관을 통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또한 신문에 실린 새마을 수련회 참가기와 당시 부모님께 쓴 편지에는 수련을 통한 깨달음과 국민과 국가에 대한 이 열사의 성숙한 인식이 담겨져 있다.
특히 이번 기록에는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애끓는 심정을 알 수 있는 기록도 있는데, ‘1987년 6월 9일 5시 5분경’으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글에서는 학교로부터 위독한 상황을 전달받은 순간부터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맞이하기까지 겪었던 사건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우리는 떨리는 걸음으로 중환자실 문으로 들어갔다. 우리 한열이가 왜 그래요? 정말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이 없고 코, 입, 산소 호흡기를 온몸에 착용해서 이름도 모르는 기계에 의해 호흡하고 있었으니…27일 동안을 말 한마디 못해 보고…한열이는 7월 5일 2시 5분에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아울러 6월 항쟁과 관련해 사망 이후의 ‘압수·수색 검증영장’과 ‘부검결과 이물질 규명 중간보고’ 기록도 포함되어 있는데, 중간보고에서는 이 열사의 머릿속에서 발견된 이물질의 분석내용과 직접적인 사인이 ‘최루탄 피격’임을 밝히고 있다.
이외에도 6월 항쟁의 현장이 담겨있는 사진도 대거 복원되었고, ‘민주국민장 실황’이 녹음되어 있는 오디오 테이프에는 ‘1987년 7월 9일 거행된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에서 고 문익환 목사의 추도사와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오열하는 음성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번에 복원된 기록들은 지난해 5월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국가기록원에 복원 지원을 요청해 올해 2월 중순부터 약 3개월에 거쳐 완성됐다.
국가기록원은 기록물의 훼손상태를 정밀진단해서 클리닝과 오염제거, 결실부 보강, 중성화 처리를 통해 원형 그대로 복원했고, 인화 사진은 이물질·얼룩·스크래치를 제거해 고해상도 디지털파일로 복원했으며 아날로그 테이프도 디지털화했다.
이경주 이한열기념사업회 관장은 “이 열사의 기록은 1980년대 사회 운동에 나섰던 학생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행동으로 나서게 되었는지 보여준다”며 “후대의 사람들은 이 기록을 통해 그 시대와 생생하게 만나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한열기념사업회는 그동안 이한열과 그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기록을 세심하게 보관한다고 했으나 사립박물관이 갖는 한계가 있었는데, 이번에 국가기록원에서 복원 지원 사업으로 귀중한 자료를 복원할 수 있게 되어 깊이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곽정 국가기록원 복원관리과장은 “이 열사의 생애기록과 6월 항쟁 기록은 80년대 시대상과 민주주의 역사를 대변하는 중요한 현대사 기록이며 필사본이자 유일본으로 그 사료적 가치도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6월 9일 기록의 날에 맞춰 국민들께 제공할 수 있어서 더욱 기쁘며, 앞으로도 국가기록원은 기록의 날의 의미를 되살려 기록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고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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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열 기자 다른기사보기